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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이름 있는 어느 전문 알코올 클리닉에서 일어난 일이다. 권위를 자랑하는 정신과 전문의인 원장의 부름을 받고 알코올중독 환자의 부인은 병원 상담실을 찾았다. 부부 모두 고등 교육을 받은 인텔리였고, 남편인 환자는 한때 대기업의 과장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병원 입원이 십 수 차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큰 기대를 갖고 입원치료를 시작한지 2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원장의 첫 마디는 왜 이혼을 안 해 주느냐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환자의 부인이 자초지정을 물었다. 원장이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내린 진단은 부인이 남편으로 하여금 술을 끊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부인이 온갖 일에 간섭하고, 스트레스를 주어 남편으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조장하다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집으로 한 시간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조금 늦게 전화를 받으면 늦었다고 짜증이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항상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하고, 용돈 때문에 자존심 상하게 하고, 여자가 집안을 치기는커녕 벗은 양말, 립스틱을 찍어낸 화장지도 치우지 않고, 자식 앞에서 남편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성질을 부리는 등 정상적인 남자도 그런 상황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남편을 살리고 싶으면 이혼을 해주라는 것이었다.
물론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공통된 증상인 조절망상 즉 자신이 환자의 행동을 조절하여 술을 끊어주려는 망상의 일종일 수 있겠으나 전문의까지 속일 정도로 능숙하게 투사하여 자신의 음주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긴 예라고 할 수 있다. 투사란 무의식적이면서도 행동으로 옮겨지는 강력한 방어체계로 자기혐오을 타인에게 떠넘겨 자신의 부담을 줄이는 과정이다. 알코올중독자는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미울수록 그는 무의식중에 미운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고 여긴다. 그들이 항상 자신의 일을 간섭하고 자신의 일을 그르쳐 나를 어렵게 만든다고 여긴다. 이런 것은 전반적인 인격과 즉각적인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알코올중독자 주위의 사람들, 가장 의미 있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어떤 수단으로든 그들에게 전해진 메시지는 “당신이 나를 알코올중독자로 알고 고치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라는 뜻이다. 중독자들은 실제로 투사와 방어기제가 잘 작동하여 주위의 사람들 특히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음주 책임을 떠넘기고 희생자로서 상황을 고치기 위해 환경을 조작한다. 중독자와 배우자의 유일한 차이는 중독자는 알코올에 의해 신체적으로 영향을 받으나 배우자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 환자인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 주변의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상처를 주고 예측 가능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실패를 반복할수록 그들은 두려움, 좌절, 수치심, 부적절함, 분개, 자기 비애, 분노의 느낌이 누적되고 그에 따라 방어기제도 커간다. 그들은 무가치함과 함께 위협받기 때문에 이런 느낌에 대한 방어로서 합리화를 사용한다. 자신들의 자유분방한 부정적인 느낌들을 배우자와 자녀 다른 가족들, 고용인, 그 외의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투사한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방어들이 알코올중독과 마찬가지로 작동하기 시작하고 이런 방어들로 인하여 희생당한다.